BLOG ARTICLE morning/soccer | 18 ARTICLE FOUND

  1. 2008년 11월 13일 [펌] 챔피언스리그 간략사 -2
  2. 2008년 11월 13일 [펌] 챔피언리그 간략사-01
  3. 2008년 04월 22일 긱스 드리블
  4. 2007년 10월 08일 [축구] 개인별 사진
  5. 2007년 10월 08일 [축구] imbc 친선경기 단체사진
  6. 2007년 09월 28일 [축구] 개인기 강습
  7. 2007년 09월 28일 [축구] 개인기 강좌
  8. 2007년 09월 20일 [축구] 오웬의 축구강좌 - 컨트롤
  9. 2007년 09월 20일 [축구] 오웬의 축구강좌 - 드리블
  10. 2007년 09월 20일 [축구] 오웬의 축구강좌 - 킥
  11. 2007년 09월 20일 [축구] 프랑스 드리블 강좌
  12. 2007년 09월 18일 [축구] 개인기 30가지
  13. 2007년 09월 18일 [축구] 헛다리 짚기
  14. 2007년 09월 18일 [축구] 크루이프 턴
  15. 2007년 09월 18일 [축구] 마르세유턴
  16. 2007년 09월 14일 [축구] 지단 트레이닝 강좌
  17. 2007년 09월 14일 [축구] 멋진 드리블 스페셜
  18. 2007년 09월 14일 [축구] 긱스의 드리블 강좌

[펌] 챔피언스리그 간략사 -2

morning/soccer 2008년 11월 13일 10시 29분



UEFA는 1992/93시즌을 기해서 '유로피언 컵'을 'UEFA 챔피언스리그'로 리브랜딩(Rebranding)한다. 가장 큰 변화는 TV중계권 판매방법이었다. 그동안 클럽들이 자신들의 '유로피언 컵' 경기를 개별 판매해왔지만, 챔피언스리그 원년 시즌부터 UEFA가 모든 경기의 중계권을 통합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참가 클럽들에게 배분하는 Collective Sales 방식으로 변경하였다. 프리미어리그와 함께 이 TV중계권 판매방식 변경은 크나큰 상업적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이하, UEFA 챔피언스리그는 'UCL'로 지칭)


마르세유의 기적, 그리고 스캔들

앞선 간략사1 말미에 잠깐 언급했지만, 원년도 챔피언은 엉뚱하게도 프랑스에서 나왔다. 1988/89시즌부터 1992/93시즌까지 리그 5연패를 달리던 마르세유는 그 기세를 몰아 결승전에서 황금멤버 밀란을 1-0으로 물리치고 프랑스 클럽 사상 첫 유럽 챔피언에 오른다. 당시 결승전에 출전한 멤버들을 보면 양팀 모두 화려하기 그지 없다.


-마르세유: 바르테즈, 앙글로마, 디 메코, 볼리, 쇼제, 드자이, 에이델리에, 복시치, 푈러, 펠레, 데샹

-밀란: 로시, 타소티, 말디니, 알베르티니, 코스타쿠르타, 바레시, 렌티니, 라이카르트, 반 바스텐, 도나도니, 마사로 (현 첼시의 쿠디치니가 백업 골키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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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컵을 들고 있는 디디에 데샹]

** 이미지 출처: http://www.cbc.ca/sports/columns/molinaro/061117.html **


그러나 기적을 연출한 마르세유의 명예는 오래 가지 못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최종전에서 상대팀 선수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UCL 우승 기록은 박탈 당하지 않았지만, 해당 년도 리그 우승을 박탈 당했고,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역시 소멸되었다.


또한 이 결승전은 1988년 유럽 챔피언의 주역인 '더치 트리오'가 밀란 유니폼을 입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반 바스텐은 무릎 부상으로 은퇴했고, 굴리트와 라이카르트는 삼프도리아와 아약스로 각각 이적했기 때문이다.



더치 원더

아약스는 네덜란드 축구의 화려한 역사를 대변한다. 70년대 유로피언 컵 3연패로 우승컵을 영구 보존하고 있으며 1994/95시즌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지금까지 총 4회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자랑한다. 유로1988 우승 후, 네덜란드 축구는 또 다시 유럽 축구계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밀란의 더치 트리오가 시들해지자마자 아약스의 황금멤버들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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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원더스]

** 이미지 출처: http://www.thevoiceoffootball.com/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143&Itemid=68 **


1994/95시즌 결승전에 출전했던 아약스의 라인업을 잠깐 살펴보자.


[선발]

-에드윈 반 데 사르: 유벤투스 -> 풀럼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UCL 우승)

-미카엘 라이지거: 밀란 -> 바르셀로나 -> 미들스브러 -> PSV아인트호벤

-다니 블린트:

-프랑크 라이카르트: 아약스 -> 밀란 -> 아약스(UCL우승), *2005/06시즌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UCL 우승

-프랑크 데 보어: 바르셀로나 -> 갈라타사라이 -> 레인저스 -> 카타르

-클라렌스 시도르프: 삼프도리아 -> 레알 마드리드(UCL 우승) -> 인터 -> 밀란(UCL 우승)

-에드가 다비즈: 밀란 -> 유벤투스 -> 바르셀로나(임대) -> 인터 -> 토트넘 -> 아약스, *UCL 준우승 3회

-피니디 조지:

-로날드 데 보어: 바르셀로나 -> 레인저스 -> 카타르

-야리 리트마넨: 바르셀로나 -> 리버풀 -> 아약스 etc

-마르크 오베르마스: 아스널 -> 바르셀로나 etc

[교체]

-은완코 카누: 인터 -> 아스널 -> 웨스트 브롬위치 -> 포츠머스

-파트릭 클루이버트: 밀란 -> 바르셀로나 -> 뉴캐슬 -> 발렌시아 -> PSV아인트호벤 -> 릴


이렇게 우수한 선수들이 동시대에 배출된 것도 굉장히 드문 경우이지만, 네덜란드 축구가 이때뿐만 아니고 지금까지 스타플레이어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참고적으로 네덜란드의 인구는 1천6백만 명이다.



위대한 밀란

그러나 80년대말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지는 시간 동안 진정한 챔피언은 밀란이었다. 현대 축구 전술의 기본을 써올린 아리고 사키 감독을 비롯,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밀란의 전설을 써내려갔다. 시즌별 밀란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1988/89: 우승

-1989/90: 우승

-1990/91: 8강

-1991/92: -

-1992/93: 준우승

-1993/94: 우승

-1994/95: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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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시 & 사키]                                                  [안첼로티]

** 이미지 출처: http://www.sapere.it/tca/MainApp?srvc=dcmnt&url=/tc/sport/percorsi/Promesse/Verga/Verga1.jsp, http://news.bbc.co.uk/sport2/low/football/europe/6677489.stm **


물론 2000년 이후 밀란은 두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기록 중이다. 사키의 위대함은 카펠로를 거쳐 안첼로티로 계승되고 있다. 살아있는 전설 파올로 말디니를 비롯, 밀란제국 건설의 공로자들인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이름을 새겨놓고 있다. 바레시를 시작으로 도나도니, 알베르티니, 코스타쿠르타, 마사로, 반 바스텐, 굴리트, 라이카르트, 바지오, 피를로, 가투소, 인자기, 쉐브첸코, 네스타, 카카, 카푸.... 푸~ 이름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야말로 슈퍼 슈퍼 슈퍼 군단의 위용이 아닐 수 없다.



레알의 부활

1997/98시즌부터 2001/02시즌까지 이어지는 레알 마드리드의 완벽한 부활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80년대 라 리가 5연패를 이어가던 레알은 90년대 들어 크루이프 '드림 팀'의 등장으로 앙숙 바르셀로나에게 리그 우승을 네 시즌 동안이나 내줘야 했다. 1994/95시즌을 분수령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국내에서 먼저 부활하게 되는데, 지금도 여전히 팬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들의 합류와 궤를 같이 한다.


스페인의 영웅 라울 곤잘레스가 1994년에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데뷔했고, 완벽 그 자체였던 레돈도, 아약스에서 UCL 우승을 경험한 시도르프와 동유럽 테크니션의 계보를 잇는 미야토비치(현 구단 기술이사)까지 합류한 레알 마드리드는 기술적으로나 전술적으로 모두 높은 완성도를 선보이며 유럽 무대를 장악했다.


1997/98시즌 결승전에서는 유벤투스를 맞이하여 미야토비치의 골로 1-0 승리하며 무려 22년만에 유럽 챔피언의 자리로 복귀한다(참고적으로 이 시즌에 디나모 키에프의 쉐브첸코라는(!) 선수가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1998/99시즌 8강에서 쉐브첸코에게 한방 먹으면서 탈락한 레알은 1999/2000시즌 다시 결승에 진출한다. 상대는 다름 아닌 헥토르 쿠페의 발렌시아. 1955년 출범한 지 45년만에 결승전에서 동일 국가 클럽이 맞닥뜨린 것이다. 레알의 3-0 완승으로 팀의 여뎗 번째 우승을 기록한다.


2000/01시즌 준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결승에서 재수 더럽게 없는 발렌시아를 꺾고 우승)에게 지면서 탈락했지만, 2001/02시즌 또 다시 레알은 결승에 진출한다. 이 결승전은 최종 스코어나 승자보다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손꼽히는 지네딘 지단의 왼발 발리슛으로 더 유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그것도 왼발로... 지단 만세!

** 동영상 출처: 유투브 **




맨유 트레블

1993년부터 시작된 UCL 브랜드 역사에서 별로 많진 않지만, 어느 누구보다 강한 임팩트를 남긴 클럽은 단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1958년 뮌헨공항 참사로부터 정확히 10년 만에 우승한다는 전형적인 감동 스토리도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지만, 199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깜노에서 들어올린 우승컵이야말로 구단 역사상 가장 빛나는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트레블을 향한 맨유의 여정은 험난했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 운도 좋았다. 리그에서는 36차전까지 아스널과 승점 75점으로 동률을 이룬 채 골득실에서 뒤져있었다. 그런데, 아스널이 37차전 상대 리즈에게 1-0으로 덜미를 잡히면서 자멸, 리그 최종전에서 토트넘을 2-1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FA컵 역시 아스널을 넘고 우승을 차지했다. 준결승전에서 아스널을 만났는데, 1-1 동점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필립 네빌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팔러를 넘어트려 페널티 킥을 내줬다. 베르캄프가 키커로 나섰고, 모두가 아스널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슈마이켈이 몸을 던져 베르캄프의 킥을 막아냈다. 연장 후반 들어 라이언 긱스의 위대한 골(잉글랜드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로 선정되었다)이 터졌고, 맨유가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뉴캐슬을 2-0으로 꺾고 우승.


1999년5월16일 리그 우승 확정, 22일 FA컵 우승 확정, 그리고 운명의 26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UCL 결승전을 위해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징계로 FA컵 결승전을 뛰지 못했던 주장 로이 킨은 UCL 결승전에도 같은 이유로 나서지 못하게 되었고 폴 스콜스도 없는 상태다. 경기 시작 6분만에 바슬러의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허용했다. 1-0이란 스코어는 전후반 정규시간이 다 끝난 뒤에도 계속 되었다. 테디 셰링험의 극적인 동점 골, 그리고 솔샤르의 역전골이 잇따라 터지면서 기적이 연출되었다.


당시 VIP석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있던 레나트 요한손 UEFA회장은 우승컵 수여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우승컵에는 이미 바이에른 뮌헨의 이름이 찍혀있는 리본까지 장식되어있는 상태였다. 요한손 회장은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그라운드로 나가보니, 이긴 팀은 울고 있고 진 팀은 춤을 추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자리를 떠나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에 두 골이 모두 터져 승부가 뒤집어진 것이었다.


[승리 직후, 흥분한 퍼거슨 감독의 유명한 어록]

I can't believe it. I can't believe it. Football, bloody hell.

** 동영상 출처: http://kr.youtube.com/watch?v=_CsfeZnJ9w8 **



이상 간략사2.

다음 간략사3에서는 무링요,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부활시킨 잉글랜드 축구, UCL 대회의 명암 소개 예정.


슬슬 겨울...

서울에서


P.S.- 정리하다 보니, 옛날 챔피언들에게 너무 무심한 듯한 느낌이 팍팍...-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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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챔피언리그 간략사-01

morning/soccer 2008년 11월 13일 10시 23분

챔피언스리그를 흔히 'European Elites' League'라고 한다. 엘리트들의 리그. 잘난 친구들만 모여서 하는 리그라는 뜻이다. 힘 센 놈들끼리 붙으니까 더 재미 있고 더 의미가 크다. 또 잘난 놈들끼리만 하니까, 다른 약한 친구들은 끼어들 틈이 없다. 재미는 있지만, 유럽축구의 빈부 격차를 조장한다는 비난의 대상이 챔피언스리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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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챔피언스 리그의 공식 로고

** 출처: UEFA 웹사이트 **


챔피언스리그는 1955년에 처음 생겨났다. 당시 공식 대회 명칭은 '유로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이었고 이를 줄여서 '유로피언 컵'이라고 불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올림픽, 월드컵 등의 스포츠 이벤트를 할 정신적 여유들이 생겨나자 프랑스의 스포츠 기자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뭐든지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건 프랑스 친구들이다. 올림픽, 월드컵 몽땅 프랑스 친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축구협회 격인 FIFA 역시 프랑스 친구들의 작품으로 조직명 자체가 프랑스어다. FIFA =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첫 대회

1955/56시즌에 처음 시작된 대회에는 총 16개 팀이 참가했다. 16강부터 준결승전까지는 홈 &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결승전만 중립지역에서 단판 승부로 우승팀을 가렸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프랑스의 스타드 람스가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랑스(Parc des Princes, 현재 PSG 홈구장) 구장에서 맞붙었다.


디 스테파노, 무뇨스, 리알, 헨토스 등의 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는 두 골을 먼저 내주고도 네 골을 몰아쳐 결국 4-3으로 최초의 유럽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참고적으로 이 때 잉글랜드 클럽들은 쪽 팔리다는 이유로 국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축구를 만들어 보급했고 우리가 축구 제일 잘 하는데, 뭐하러 쪽 팔리게 애들 노는 데 가냐, 라고 생각했었다. 잉글랜드 행님들은 예나 지금이나 기고만장이다. (일관성 있어서 참 좋다.-_-)


어쨌든 그 유명한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는 천하무적이었다. 원년 대회부터 시작해서 1960년 5회 대회까지 5연패 싹쓸이. 총 우승횟수가 5회이거나 3연속 우승을 차지하면 우승 트로피 진품을 구단이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는 규정이 생기기가 무섭게 스페인 친구들이 최초의 우승 트로피 진품을 낼름 가져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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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결승전(프랑크푸르트v레알마드리드) 매치데이 프로그램]

레알 마드리드가 7-3으로 이겼다. 디 스테파노 3골, 푸스카스 4골... 배트맨 & 로빈이냐...-_-;

** 출처: http://cupfinalprogrammes.co.uk/index.php?main_page=index&cPath=5 **



브리티시 클럽 첫 우승

2회 대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출전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챔피언스리그에서 처음 우승한 영국 클럽은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나왔다. 이름하여 쎌틱!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영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들 중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이 많다. 클럽 역시 마찬가지. 쎌틱은 1967년 리스본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카테나치오 선풍을 몰고 있던 인터 밀란을 2-1로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참고로 1967년에 스코티시 리그의 떠오르는 유망주 알렉스 퍼거슨이 덤퍼라인에서 레인저스로 이적하는 꿈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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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67시즌 유로피언 컵에서 우승한 셀틱]

앞줄 맨 왼쪽이 지미 존스톤이다. 셀틱 팬들이 뽑은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 출처: http://www.jocksteincsc.com/celtic heroes.html **



진정한 축구 황금시대

196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개최된 결승전에서 에우제비오의 벤피카를 4-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1958년 뮌헨 참사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맷 버스비의 쾌거였으며, 이 드라마로 맨유는 전세계적 인기를 얻는다.


1970년 들어서는 유로피언 우승팀 명단을 외우기가 쉬워진다. 아약스 3연패, 바이에른 뮌헨 3연패, 리버풀 2연패, 노팅햄 포레스트 2연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오~~~' 소리 나올 만한 킹왕짱 슈퍼스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 아약스: 요한 크루이프, 요한 네스켄스, 아리에 한(기억하는가! 중국 대표팀 감독이었다) 등등

- 바이에른 뮌헨: 프란츠 베켄바우어, 율리 회네스, 게르트 뮐러 등등 --> 크라머 감독이 두 번 우승

- 리버풀: 케빈 키건, 케니 다글리쉬, 그래엄 수네스, 알란 한센 등등


많은 사람들은 1970년대를 축구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미디어 기술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이렇게 전세계적 슈퍼스타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요즘에야 TV만 켜면,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전세계 축구 소식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많아지기 쉬운 환경이지만, 그 당시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국내에 컬러TV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 후반이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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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73시즌 아약스의 유로피언 컵 3연패 달성]

우승컵을 들고 있는 게 크루이프. 선수들이 유니폼을 교환해서 마치 유벤투스가 우승한 것 같다.

** 출처: http://www.ajax-usa.com/desk/the-greatest-game-ever.html **



잉걸란~~드, 잉걸란~~드, 잉걸란~~~

196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후 뜸하던 잉글랜드 클럽들의 시대가 열린다. 리버풀이 올코트 프레싱 축구(아~~ 지겹다. 리버풀은 이때도 냅다 뛰어다녔다)로 1977년 우승한 것을 시작하여, 노팅햄 포레스트, 아스톤 빌라가 내리 유로피언 컵을 독식했다.


- 1977: 리버풀

- 1978: 리버풀

- 1979: 노팅햄 포레스트

- 1980: 노팅햄 포레스트

- 1981: 리버풀

- 1982: 아스톤 빌라

- 1983: 함부르크

- 1984: 리버풀


...뭐 이런 식이다.  이런 잉글랜드 클럽들의 득세는 클럽 자체의 인기를 높이기도 했지만, 잉글랜드의 고약한 훌리건 문화를 전 유럽으로 전파하는 계기가 된다. 원정 가는 곳마다 잉글랜드 팬들은 술에 취해 싸움을 걸고 기물을 부수며 유럽인들의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England'가 아니라 'ANGERland'로 나라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여튼 문제만 일으켰다. 하지만, 대륙의 축구 광팬들은 이걸 보고 "오~~ 죽이는데! 우리도 하자. 아뵤~~"라고 받아들였다. 나쁜 건 언제나 전파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뭐든지 과하면 탈이 난다. 1984년 우승에 이어 1985년에도 결승전에 오른 리버풀은 벨기에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미셸 플라티니의 유벤투스와 결승전을 벌였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고가 터졌다. 리버풀 팬들이 유벤투스 팬들을 한쪽으로 몰아세웠고, 도망가려는 유벤투스 팬들이 계속 한쪽 면으로 첩첩 몰려들었다. 벽면이 무너지고 인파에 깔린 39명의 축구 팬들이 목숨을 잃었다.


- 사망자: 이탈리아인(유벤투스 팬) 32명, 벨기에인 4명, 프랑스인 2명, 아일랜드인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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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팬과 스탠드 벽면 사이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유벤투스 팬들]

반대쪽에서는 리버풀 팬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이들을 계속 몰아세우고 있다.

** 출처: http://www.channel4.com/history/microsites/H/heysel/index.html **


이 대참사로 인해 UEFA는 리버풀에겐 10년간 유럽 대회 출전 금지, 모든 잉글랜드 클럽들에게는 5년간 출전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 전까지 유럽을 호령했던 잉글랜드 클럽들은 멍청한 팬들, 안이한 경기장 군중 관리로 인해 유럽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넌 누구냐?

강호의 명문파 하나가 빠지자 바야흐로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하는 듯 했다. 1986년에는 드라큘라들이 나타나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루마니아 최고 명문 슈테아 부쿠레스티가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바르셀로나를 2-0으로 물리치고 첫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이듬 해에는 벤피카에게 질쏘냐 포르투 FC가 우승, 그 다음에는 우리의 희동구 선생이 이끈 PSV아인트호벤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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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유로피언 컵 우승 후 PSV에 입단한 호마리우]

당시 나이 호마리우 22세, 희동구 선생 42세... (서울에선 88올림픽, 난 16살...-_-)

** 출처: http://psv1913.web-log.nl/ **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탈리아 형님들을 비롯한 강력한 문파들이 힘을 재정비하여 다시 낯익은 우승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밀란,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 등의 부활.


그리고 1992/93시즌에는 대회 명칭이 오늘날의 'UEFA 챔피언스리그'로 바뀌었다. 대회 포맷도 약간 바뀌는 등,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UEFA는 선전했다. 그 선전 대로 챔피언스리그 원년 챔피언에 난데 없이 마르세유가 등극하면서 UEFA를 기쁘게 해줬다. 유럽을 접수한 프랑스 축구의 황금멤버들은 나아가 1998년 월드컵 유로2000까지 우승한다.


지금까지 유로피언 컵의 간략사. 다음에는 챔피언스리그 간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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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스 드리블

morning/soccer 2008년 04월 22일 0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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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개인별 사진

morning/soccer 2007년 10월 08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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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KB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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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개인기 강습

morning/soccer 2007년 09월 28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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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개인기 강좌

morning/soccer 2007년 09월 28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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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오웬의 축구강좌 - 킥

morning/soccer 2007년 09월 20일 0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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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프랑스 드리블 강좌

morning/soccer 2007년 09월 20일 0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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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개인기 30가지

morning/soccer 2007년 09월 18일 14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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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헛다리 짚기

morning/soccer 2007년 09월 18일 1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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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크루이프 턴

morning/soccer 2007년 09월 18일 13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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