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M BRANCH, GROSSE ILE MICHIGAN. 1999.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낮에 삼청동에 갔다가
정독도서관에 차를 주차하기 위에 갔다.
늦겨울 도서관엔 그래도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고
정원 한 편에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었다.
근데 문득 왜 겨울이 올까?
저 나무들은 왜 겨울동안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저들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렇게 몸뚱아리를 다 들어내고 앙상하게 겨울을 버티는 모습이
웬지 안쓰러워 보이고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내내 비도 적당히 오고 좋은 햇빛에 호사하며 사는
나무들도 있는데
우리나라 나무들은 너무 가혹한 환경에 사는 것은 아닐까?
정말 겨울은 저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사실 비도 많이 오고 햇빛도 일년 내내 적당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인생도 늘 잘 나가고 늘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근심걱정도 없고 다툴일도 없고 늘 웃는 얼굴로 지낼 수 있고..
하지만 사는일은 어디 그런가
좋은일이 있다보면 나쁜일도 있고.. 또 잠시 슬럼프도 있는 것이고~
작년엔가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선수가 한창 주가를 올리다가
잠시 주춤했던 적이 있었다.
아나운서가 이승엽선수에 슬럼프에 원인이 뭐냐고 묻자
해설자는 이승엽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했다. 사람이 늘 잘 칠 수는
없고 잘 맞다가도 안 맞고 하는데 그걸 극복하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며 누구나 그런 굴곡을 겪게 마련이다.
나무도 겨울이 어쩌면 그런 굴곡이 아닐까?
어쩌면 겨울은 나무에게 있어서 시련이 아니라 채움의 시간,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을 내 잎들을 다 떨구어 내고
겨우내 앙상한 모습으로 한해를 돌아보며 내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비우고 나서
긴긴 겨울 내 자신을 다시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시련이란 것이 사실은 기회요 채움의 시간일 수 있다.
난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낮에 삼청동에 갔다가
정독도서관에 차를 주차하기 위에 갔다.
늦겨울 도서관엔 그래도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고
정원 한 편에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었다.
근데 문득 왜 겨울이 올까?
저 나무들은 왜 겨울동안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저들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렇게 몸뚱아리를 다 들어내고 앙상하게 겨울을 버티는 모습이
웬지 안쓰러워 보이고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내내 비도 적당히 오고 좋은 햇빛에 호사하며 사는
나무들도 있는데
우리나라 나무들은 너무 가혹한 환경에 사는 것은 아닐까?
정말 겨울은 저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사실 비도 많이 오고 햇빛도 일년 내내 적당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인생도 늘 잘 나가고 늘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근심걱정도 없고 다툴일도 없고 늘 웃는 얼굴로 지낼 수 있고..
하지만 사는일은 어디 그런가
좋은일이 있다보면 나쁜일도 있고.. 또 잠시 슬럼프도 있는 것이고~
작년엔가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선수가 한창 주가를 올리다가
잠시 주춤했던 적이 있었다.
아나운서가 이승엽선수에 슬럼프에 원인이 뭐냐고 묻자
해설자는 이승엽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했다. 사람이 늘 잘 칠 수는
없고 잘 맞다가도 안 맞고 하는데 그걸 극복하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며 누구나 그런 굴곡을 겪게 마련이다.
나무도 겨울이 어쩌면 그런 굴곡이 아닐까?
어쩌면 겨울은 나무에게 있어서 시련이 아니라 채움의 시간,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을 내 잎들을 다 떨구어 내고
겨우내 앙상한 모습으로 한해를 돌아보며 내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비우고 나서
긴긴 겨울 내 자신을 다시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시련이란 것이 사실은 기회요 채움의 시간일 수 있다.
난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