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로마인이야기 | 3 ARTICLE FOUND

  1. 2007년 08월 03일 로마로 떠났던 긴 여행을 마치고 나서..
  2. 2007년 05월 18일 이태리 1- 포로 로마노
  3. 2007년 05월 07일 로마인 이야기 3- 승자의 혼미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001년 로마여행 중 포로로마노에서..>


좋은 친구와 긴 여행을 끝마치고 막 돌아온 느낌이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보며 여행을 추억하며 회상에 젖어 있는 듯 하다.
이번 여행은 동반한 내 친구의 풍부한 지식과 상식으로 참 즐겁고 유쾌한 여행이었던 거 같다.
이번 여행을 함께해 준 시오노 나나미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97년 1-3편을 읽은 후 다시 놓았다가..
올해 1월 다시 1편을 집어 들어 15권까지 7개월이 걸려서 15권을 읽었다.
정말 그 기간 내내 내가 마치 다시 로마로 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 눈 앞에서 살아 숨쉬는 듯 한 인물들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 하기도 했고
그리고 내가 그 소용돌이 속에 직접 빠져서 당사자로도 된 것처럼
가슴 졸이며 지켜보기도 하고 억울해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했던 것 같다.

로마인이야기를 읽으며
왜 그토록 다시 로마가 회자 되는지… 많은 영화가 만들어 지고.. 책이 써지고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보다 로마에 대해..
아니 서양의 역사적 배경과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그들의 생각의 기저를 이루게 되었던 것들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로마의 성공비결과 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면모 속에
지금 우리네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근세 들어서의 세계적인 산업화와 자본주의화, 개방화의 물결 속에서 뒤 쳐짐으로써
외세의 침략을 받고 6.25전쟁을 거치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남북한 대립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그리고 한미 FTA까지 …

로마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란 생각부터 ..
우린 왜 그때의 로마처럼 되지 못하는 것 일까란 안타까운 마음까지..

앞으로의 방향과 우리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자 지도의 역할까지..
난 로마인 이야기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로마인 이야기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지적들, 로마인에 대한 명목적인 찬양과 편향적인 기술, 기독교에 대한 지나친 반감 등등은
나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것들 배울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독서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말 책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느끼해 준 책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아무래도 로마의 건국과 박진감 넘치는 전투가 펼쳐졌던
즉, 카르타고 전쟁과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 내전 등이 묘사되었던
2-5권이 최고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리고 6-10권은 어떻게 로마가 평화를 유지해 갔고
오현제 시절의 이야기는 신이 나고 흥미는 있었으나..
역시 평화보단 전쟁이야기가 재미와 관심은 더 가는 듯 했다.

그리고 10권부터 15권까지는 그저 아쉬움과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선반 위의 유리잔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초초함과 내가 무언가 도와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대한 무기력감이었다.

특히 15권에서는 많은 부분이 아쉬웠다.
초기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많이 줄어들고
시오노 나나미 역시 먼 발치에서 떨어져서 봤던 모습, 또는 전해 들었던 것들을
그냥 간략하게 전달해 주는 듯한 느낌이어서

처음 몰입되었던 느낌은 없어지고 나 역시 관련 없는 방관자처럼
그냥 무심하게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쓰려져 가는 로마의 모습은 안따까움 그 자체였다.
로마인이야기와 함께 여행하며, 정이 들어서 일까?

그녀는 로마의 최후를
로마는 언제인지 모르게 그래서 위대한 순간도 없이 그렇게 쓰러져갔다라고 말해주었다.

마치 긴 풍파에 바위가 모래가 되듯 로마는 그렇게 쇠망해 갔던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더 로마다운 최후가 아닐까 싶다.
로마는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해서 조금씩 멸망해 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팍스로마나에 대해서
팍스로마나가 언제부터 언제까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수도 로마가 성벽으로 지켜지지 않았던 기간이라고 말하였다.

팍스로마나를 이 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아니 어쩌면 로마제국에 대해서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의미와 의의를 말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해준 친구에게 정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친구로 인해 나는 내 인식의 폭과 깊이 그리고 사색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전해준 그리고 이야기해주고자 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되 새게 보며
이제 길고 길었던 내 여행을 끝마치고자 한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포로 로마노 전경
    고대 로마시대 로마인들 삶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
이곳에는 카이사르를 비롯하여 많은 황제들이 건축했던 공공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콜로세움 경기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콜로세움 경기장 앞에서..

콜로세움은 제정시대 초기 기원전 약 1세기 무렵
베스파시아누스황제에 의해서 건립되었다고 한다.
원래 네로황제가 자신의 호화로운 궁전(도무스아우렐리아/황금궁전)을 짓기 위해
만들어 놓은 터였는데..

네로황제가 암살로 죽은 이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시민들의 눈을 의식하여 이곳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콜로세움 경기장을 세웠다고 한다.

로마 황제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권자(?)인 원로원과 시민들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한계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인들이 좋아하는 검투사 경기를 열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 8권을 참조하여 작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결혼식

콜로세움 앞에서 결혼식을 거행하던 이태리 신랑신부
뒤에 리무진으로 봐서 부자인듯 했다..
아니면 원래 이태리식인가?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실의 입앞에서..ㅎ
로마에 여행하면 모두가 찍는 다는 진실의 입

원래는 하수도 뚜껑이라고 하는데..
로마의 휴일이란 영화에서 오드리헵번과 그레고리펙이 여기에 손을
넣은 장면이 나오고서부터 유명해졌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

베네치아광장 앞으로 이어져있는데 이곳에서 보면 포로로마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은 로마의 언덕 들 중에서도 특히 작아서
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로마인들이 최고의 신으로 생각했던 유피테르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최고 제사장(제정시대에는 주로 황제가 겸임)이 제사를 지내고
개선장군이 개선식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혼자 올라와서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를
올렸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피톨리노 언덕에 올라가면 카피톨리노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에는 로마 5현제중 가장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다.
규모가 크고 엄청나서 마치 정말 지금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중세시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황제들의 기마상이 많이 파괴되었는데..
다행히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던 것을 미켈란 젤로가 이 언덕으로 가지고 와서
설치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래 파괴되었던 이 곳을 복원한 것은 교황 바오로3세의 명을 받은 미켈란 젤로이다.
광장에는 로마시청과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마인이야기 3권은
카르타고 전쟁에서 승리한 후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로마가 겪게되는 혼란과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의 첫 머리에 한니발의 말을 인용한
외부의 적이 접근하지 못하는 건강한 육체라도 그 육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내장의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라는 말처럼..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는 로마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과 시스템이 요구되나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 그리고 기득권측은
이것에 순응하기보다는 옛것을 지키고 기득권을 지키는 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충돌과 혼란이 야기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로마가 가야할 두가지 큰 갈래..
첫째, 공화정을 사수하며 발전하느냐  
둘째,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을 도입하느냐의 갈림길에서..

각각의 방향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는
술라와 카이사르 두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로마인이야기 3권에선 우선 술라에 대해 중점적으로 서술되며,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는 4권, 5권에서 자세하게 서술된다.

3권에선
카르타고 전쟁이후 로마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표출시키고
이를 개혁하려고 했던 그라쿠스 형제, 이를 저지하려 했던 원로운 세력과의 갈등
군제개혁을 단행한 마리우스 그리고 원로원 체제의 공화정을 견고하게 하려했던 술라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 로마가 겪게되는 혼란과 변화를 하나씩 알아보면

로마는
카르타고 전쟁의 승리로 많은 속주가 로마에  편입되고
속주에서 대규모로 밀을 생산함에 따라 이태리 본토내의 자영농들이 몰락하게 된다.
그로인해 로마로 많은 실직자들이 밀려들어오게 되고
시민들의 많은 수가 자산이 줄어들게 되자
군대로 징집하는 시민들의 재산하산선을 낮추게 된다.

이들로 인해 군대의 근간이 되는 시민병들의 자질이 떨어지게 되고
예전의 로마군다운 위용을 점차 퇴색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로마가 처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이
그라쿠스 형제였다.

그들은 로마가 처한 문제점을 타파하고자
우선 다시 자영농을 육성해야한다고 인식하고
그 동안 귀족들이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던 부정 임차토지를 반환할 것을
법으로 규정한다.

또한, 로마시민권에 대한 법류를 개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원로원으로써는 원로원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받아드려졌고
기득권층은 귀족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이 크게 침해되는 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라쿠스형제는 원로원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두명 모두 살해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라쿠스형제가 바라보았단
로마가 처한 현실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가며 하나씩 현실화되고
원로원의 생각과는 반대로 흘러가게 되었다.

포에니전쟁의 승리로
로마는 이제 로마와 이태리반도에 한정된 도시국가가 아니였으며
드 넓은 영토를 지배하는 대제국의 길로 접어 들게 된 것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적인 시스템은
그러한 현실을 뒷받침해주지 못했으며,
원로원은 자신의 기득권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불균형으로 인해
그라쿠스형제의 개혁이 실패하고 마리우스와 술라의 처참한 반대파 숙청이
자행되는 등 로마는 혼란을 겪게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며 결국 로마는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되었고
결국 지중해 일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제국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3권은 그 발전 와중에
로마가 격게되는 사회적 혼란과 고난과 역경을 맞이하게 되는
로마인들의 어려움..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